영화 소공녀는 2018년에 개봉한 한국 독립 영화로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주연을 맡았다.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개봉 당시에는 상영관이 많지 않았지만 이후 OTT 등에 배포되면서 입소문을 크게 탄 영화다. 영화 소공녀는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주인공 미소의 소소한 일상과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소공녀, 집을 포기하다
미소(이솜)는 3년 차 전문 가사도우미로 생활하며 하루하루 수당을 받으며 살아간다. 전기와 보일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단칸 월세방에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생활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에게는 하루 한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괜찮기 때문이다. 하루 일당 4만 5천 원. 이 중 밥값 5천 원, 위스키 1만 2천 원, 담뱃값 2천5백 원을 제외하면 하루 2만 5천5백 원이 남는다. 남은 돈으로는 월세와 밀린 세금,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걸 막는 약을 사야 한다.혹독한 겨울도 강한 의지로 견딜 수 있던 그녀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5년 만에 어쩔 수 없이 월세를 5만 원 더 인상하겠다는 집주인의 통보에 미소는 어느 술집아가씨의 오피스텔에서 추가로 일을 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려던 미소는 담배값도 4천5백으로 인상되었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게 된다. 집에 돌아와 가계부를 적던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 둘 중 어떤 것을 포기할지 망설이다가 고민하던 끝에 살고 있던 집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달동네에 있는 여러 집을 보러 다니지만 하나같이 멀쩡한 집이 없다. 그녀에겐 남자친구인 한별(안재홍)이 있었지만 그도 학자금대출을 갚고 있는 작가 지망생으로, 현재는 공장에서 근무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당장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미소와 한별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지만 서로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컸다. 한별은 안타까운 마음에 나중에 돈을 벌어 집을 구해주겠다고 하지만 미소는 지금 당장 남자친구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살던 집을 정리하던 미소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학창 시절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밴드부 사진이다. 미소는 추억 속의 그들과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캐리어 하나, 가방 하나를 매고 본격적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 시절 그 친구들
가장 먼저 찾아간 친구 문영은 밴드의 베이스 담당이다.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잠깐의 휴식시간에 수액을 맞아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바쁜 처지로 미소의 부탁을 거절한다. 두 번째로 찾아간 친구는 키보드를 치던 현정이다. 결혼을 해서 시부모댁에 지내고 있지만 미소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일단 집에 들어오게 한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님은 미소를 별로 환영하지 않았고, 자신 때문에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는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드럼 담당 대용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내가 집을 나가버려서 집 상태가 엉망이다. 미소는 매일 술을 마시며 우는 대용을 위로하며 집안일을 도우며 머물지만 이곳에서도 오래 있지는 못한다. 네 번째로 찾아간 친구는 보컬 담당 록이다. 오랫동안 노총각으로 지내면서 부모님과 지내는 록이는 미소를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아들이 얼른 결혼했으면 하는 록이의 부모님은 미소와 록이를 결혼하게 하려는 계락을 세워 미소를 곤란하게 만든다. 결국 미소는 도망치듯 록이의 집을 빠져나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친구는 기타 담당 정미. 정미는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조신한 척하며 결혼생활을 해야만 하는 정미에게 미소는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결국 미소에게 나가라는 통보를 하고 만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미소에게 남은 사람은 남자친구 한솔이뿐이었다. 하지만 한솔이는 자신들이 돈 때문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해외에 나가 돈을 벌겠다고 미소에게 말한다. 한솔이가 해외로 나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미소는, 그대로 캐리어를 끌고 다시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된다.
미소서식환경의 의미
영화를 보기 전, 이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지 못할 수 있다. 19세기 미국 소설 소공녀를 오마주한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줄임말인가. 영화의 영어 표기는 소공녀(Micorohabitat)로 19세기 소설 소공녀(The Little Princess)와는 전혀 다른 영어 표기이다. Microhabitat를 직역하면 미소서식환경이란 뜻으로 작은 미생물,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을 의미한다.영화를 보기 전에는 무슨 말인가 싶다가 영화를 본 후에는 주인공 미소의 이름을 여기서 가져왔구나 깨닫게 된다. 또한 미소라는 이중적인 이름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는 주인공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미소라는 캐릭터는 시대적, 환경적 배경은 다르지만 힘든 역경 속에서도 고귀함과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소설 소공녀 속 주인공 세라와 어느 정도 겹처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밴드활동을 하던 순수함을 갖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미소를 다시 만난 친구들은 그런 미소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본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키려 노력하는 미소를 보며 끝까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지켜가며 살아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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