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표류의 시작
어느 날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인도인에게 캐나다인 소설가가 찾아온다. 이름이 '파이'인 이 인도인은 어렸을 때 가족들과 화물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되고 만다. 당시 16세였던 파이는 구명보트에 혼자 남게 되었는데 망망대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화제가 되었다. 캐나다인 소설가는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듣고 책으로 쓰려던 것이었다. 어렸을 적 파이는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3가지의 종교를 동시에 믿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종교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라고 항상 조언하곤 했다. 파이의 아버지는 나라의 지원을 받아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원이 점점 줄어들어 동물원을 운영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파이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고 캐나다에 정착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들을 팔게 된다. 동물들을 일본 화물선에 싣고 파이의 가족도 같이 타게 되는데, 바다를 항해하던 어느 날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배는 침몰한다.
신비롭고 광활한 바다에서
바다속에 빠졌던 파이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구명보트 안이었다. 파이는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화물선에 실려있던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가 구명보트에 추가로 올라타게 된다. 하지만 하이에나는 통제할 수가 없었고, 하이에나는 파이와 다른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위협한다. 결국 하이에나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을 죽여 잡아먹고 오랑우탄 마저 죽인다. 그런데 갑자기 천막아래에서 벵갈 호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하이에나를 죽여버린다. 이제 보트에는 리처드라는 이름을 가진 벵갈 호랑이와 파이가 남게 되고, 그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파이는 보트에 있던 생존비법서를 읽으며 살아나갈 궁리를 하고 호랑이는 그런 파이를 호시탐탐 노린다. 파이는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 구명튜브에 잡동사니를 묶어 그곳에서 지낸다. 파이는 호랑이가 굶으면 헤엄쳐서 자신을 잡아먹을 거란 생각에 낚시를 통해 호랑이가 먹을 먹이도 구해준다. 오랜 표류에 힘이 빠진 호랑이도 그런 파이의 모습에 조금씩 맘을 열고 인정해주기 시작한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면서 거친 폭풍우도 만나고 신비한 해파리때와 고래도 만나는 그들. 어느 날 표류하다가 낯선 조그마한 섬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은 해초나 식물 뿌리 등 먹을 것도 풍부하고 맑은 물도 있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파이와 호랑이는 미어캣 때가 살아가고 있는 신비로운 섬에 머물기로 하지만 그 섬 전체가 식인생물로 뒤덮여 있는 곳이란 걸 알고 부리나케 도망가 다시 표류생활을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구명보트는 멕시코의 어느 해안가에 다다르게 된다. 호랑이 리처드는 조용히 해안가의 밀림을 바라보다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걸어가고, 그 모습을 보며 파이는 기력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또 다른 두번째 이야기
구조된 파이는 어느 병원의 침실에 누워있는데 침몰된 화물선의 선주에서 사고보고서 작성을 위해 일본직원들을 파견 보낸다. 하지만 직원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달라며 설득한다. 파이는 그들의 요구에 첫 번째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사실 구명보트에 탄 건 동물들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는 것. 당시 그 구명보트에는 다리를 다친 선원과 주방장, 어머니, 그리고 파이가 타고 있었다. 주방장은 다친 선원을 죽이고 그의 시체를 이용해 낚시를 한다. 파이의 어머니는 그런 주방장을 악마라고 하며 설전을 벌이고 경멸하는데 주방장은 파이의 어머니마저 죽이고 상어 떼에게 던져버린다. 그런 모습을 본 파이는 분노에 차올라 주방장을 죽이고 혼자 구명보트에 남아 표류하다 결국 일본 선박에 구조된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캐나다 소설가에게 파이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어라'라고 말하고, 소설가는 신비롭고 믿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첫 번째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는 열린 결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열린 결말인 구조이지만, 사실은 열린 결말로 보이도록 설계한 한 가지 결말을 갖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믿음에 관한 영화로 첫 번째 이야기는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환상적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믿을 수 있지만 믿고 싶지 않은 잔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이는 일본 보험회사 직원들과 소설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모두 첫 번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파이와 작가의 마지막 대화를 숙고하면 이야기가 해피엔딩인지 여보는 청취자(작가, 보험 직원 및 청중)의 믿음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파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주로 종교에 관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적 신념(신앙)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첫 번째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성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파이에게 합리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잔인한 상황에서 파이가 선택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그 믿음으로 잔인한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바꾸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고난을 견디는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사실 종교를 이성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지극히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게 여겨진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믿음과 그 믿음이 만들어 내는 기적은 영화 속 파이의 행동뿐 아니라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종교의 순수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파이의 이야기는 그런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 보인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 영화 후반부에서 파이가 소설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선호하는지 묻고, 소설가는 마지막에 진실을 묻지 않고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낫다고 말한다. 이는 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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